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산돌의집 http://planet.daum.net/990-9191/ilog/4517099 복사
원 게시물을 보시면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2008.3.9.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마가복음 2장 1∼12절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2: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2: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2:4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2: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2: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8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2: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2: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2: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어느 유명한 의학박사가 소생 가능성이 거의 없는 불치병 환자를 수술하게 되었는데 수술하기 전에 평소처럼 기도를 드렸습니다. 환자를 사랑하는 간곡한 기도였습니다. 장시간에 걸친 수술은 대성공을 했습니다.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수술을 참관한 의학도들은 수술을 성공시킨 것이 기도의 능력인지 의학박사의 기술의 결과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것은 환자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또한 환자를 사랑하는 의사의 사랑이 합쳐진 결과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어느 가난한 집에 가셨을 때, 그의 소문을 듣고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몸을 움직일 수 없을만큼 많은 사람들이 꽉 들어 차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행한 놀라운 기적들에 대한 소문을 익히 알고 있던 사람들이 중풍병에 걸린 친구를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당도했을 때에는 도저히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재치 있게 움직여 집 밖 지붕에 오르는 계단을 이용해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당시 팔레스틴 지방의 지붕은 전체가 진흙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흙 지붕으로 뜯고 중풍병 친구를 그곳으로 달아내려 곧 바로 예수님의 발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네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즉각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한 마디로 중풍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1.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와 그 친구들에게서 주님은 믿음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어떤 믿음을 보셨을까요? 오늘 성경에는 중풍병자를 메고 나온 네 명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 병자의 친구들일까요? 아니면 친척이나 가족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비집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만나려면 몇 날이고 기다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고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냥 돌아가지 않게 했을까요? 그것은 확신 때문입니다. 그들은 분명하게 확신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중풍병을 치료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온갖 지혜를 짜내어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계신 방의 지붕을 뜯어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통해 그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내려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의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문제를 가지고 나오는 믿음, 문제를 맡기는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가 문제를 가지고 나오는가를 보고 계십니다. 문제를 맡기는가를 보십니다. 장애물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보십니다.
오늘 성경 2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가 없게 되었더라”고 말씀합니다. 모여든 많은 사람들이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한 사람도 아닌 다섯 사람, 그것도 들것에 운반되는 환자로서는 사람들의 장벽을 뚫고 지나간다는 것은 너무나 큰 장벽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해 나가노라면 언제나 크고 작은 장벽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럴 때 믿음의 사람과 보통 사람이 구별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장벽이 있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는 삶은 일을 하다가 방해되는 사건이 생기면 대개 상식으로 돌아갑니다. 경험과 이성으로 돌아갑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합니다.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중론이 되곤 합니다. 소극적이 됩니다. 부정적이 됩니다. 그러나 믿음은 이런 것들을 초월합니다. 믿음은 방해를 뚫고 나갑니다. 믿음의 길은 제3의 길을 개발해 나갑니다.
주님께서는 그 어떤 방해의 장벽이 있다고 포기하지 않고 지붕을 뚫어 구멍을 내서라도 목적을 이루는 믿음을 보십니다. 주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린 소년 다윗 앞에 거대한 무적의 적장 골리앗이 앞을 가로막아 서듯이 높은 장벽의 환경에 부딪힐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해 나오자마자 애굽 군사가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추격해 오고 앞에는 홍해 바다에 가로막혀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부딪혀 이제는 옴짝달싹 못하고 전멸을 당할 수밖에 없는 장벽에 부딪힌 것같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깜짝 깜짝 놀라고 충격을 받고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좌절과 낙심과 절망에 부딪힐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제는 내 인생은 끝났구나!”, “다시 살아날 가능성(可能性)은 전혀 없구나!”, “나는 완전 파멸이다!”하는 등 별별 생각을 다하게 되는 좌절과 실망의 늪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인(Christian)이 된 우리는 이러한 때에 절망하거나 좌절하는 대신에 하나님께 대한 신앙으로 이 모든 장벽을 뛰어넘을 수가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에도 보면 높이뛰기 경기가 있습니다. 그 선수들은 자기 키의 배도 더 되는 높은 장애물을 뛰어 넘은 것을 보는데 그것은 바로 손에 든 장대를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그 긴 장대를 손에 붙잡고 달려오다가 그 장대를 의지해서 자기 키의 배도 넘는 높은 장애물을 거뜬히 뛰어 넘어서 금메달도 타고 은메달도 탑니다. 이와 같이 우리 앞에 아무리 절망적인 장벽이 가로막는다고 하더라도 믿음이라고 하는 장대를 이용하면 거뜬히 뛰어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에게는 장애물이 너무나 컸습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예수님께 나가는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제3의 길을 택하여 지붕을 뚫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련한 형제, 중풍 병 환자를 예수님께 나아가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중풍병자를 데려온 친구들은 남이 상상치 못한 특별한 방법을 통해 예수님께로 문제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아무도 그렇게 할 것을 생각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행했습니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쉽게 포기하는데 있습니다. 나는 안된다고 하는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문제입니다. 제1길이 안되면, 제2의 길로 나아가십시오. 제2의 길이 안되면 제3의 길을 찾으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보이라고 하십니다.
2.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5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을 고쳐주시기 전에 중풍병자가 지은 죄부터 먼저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 사람은 중풍병을 고침 받기 위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이 먼저 치료받아야 할 것은 병이 아니라 죄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는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어긋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명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장21절을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않는 것이 죄의 뿌리’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3장23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담의 원죄를 안고 태어나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 영광을 위해 살고자 하는 본죄가 있습니다. 중풍병자도 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할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중풍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다고 핑계대며, 남을 의존하고 감사치 않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무기력한 삶을 산다면 하나님 앞에 큰 죄인입니다. 중풍병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수 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송명희 시인을 보십시오. 그녀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병과 싸우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육신이 멀쩡한 사람보다 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육신은 멀쩡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지 않고 무기력하게 지내는 영적인 중풍병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느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작은 어려움이 있어도 남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쉽게 드러누워 버립니다. 이런 사람은 <탓>을 잘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지만 가난한 집안 탓, 좋지 않은 건강 탓, 성격 탓을 하며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학생이기 때문에, 또는 평신도이기 때문에 너무나 피곤하여 자기중심적으로 살 수 밖에 없다고 합리화시킵니다. 그러면서 병만 나으면, 조건이 좋아지면, 날 사랑하고 이해해 주기만 하면, 내 인생문제가 해결되기만 하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조건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이요, 핑계에 불과합니다. 이런 조건이 좋아지더라도 내면에 죄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이들은 모두 죄사함받아야 할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중풍병적인 삶을 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원받고 새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하는데 이런 사람은 조건이 개선되기만 기다리며 죄를 들고 주님 앞에 나오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유교적인 가치체계도 무너져 그나마 있었던 도덕적인 죄의식마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고해서 죄의 값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그 후에는 무서운 심판이 있음을 엄숙히 경고합니다. 우리는 조건 탓, 상황 탓, 남의 탓을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는 사함받아야 해결됩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나아온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은 죄가 완전히 탕감되어 영원히 없어진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무죄판결 받은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선포하시므로 그를 얽어매고 있던 죄의 사슬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많은 죄를 짓고는 죄의식에서 벗어나고자 나름대로 피나는 투쟁을 합니다. 지은 죄만큼 선을 행하므로 죄에서 벗어나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선을 행함보다 죄 짓는 속도가 훨씬 빨라 늘 절망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죄를 합리화하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죄를 이해받음으로 죄의식에서 벗어나려고도 합니다. 그러나 양심은 죄인임을 고소합니다. 세월 속에 잊혀지기를 기대하지만 한 번 마음 판에 새겨진 것은 결코 잊혀지지 않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느 정도 잊을 만하면 비슷한 상황이 벌어져 과거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나 그를 미치도록 괴롭힙니다. 죄는 지독한 것이어서 죽기 전에는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인간은 죄로 인해 고통하며 불행한 삶을 살다가 죄의 값으로 죽고 심판받게 됩니다. 이 죄는 인간의 힘이나 노력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이 땅에 사죄의 권세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일방적으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만 완전히 해결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일방적으로 죄사함을 선포하실 수 있는 것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며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의 값을 다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많지만 가장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내면의 죄문제입니다. 우리는 죄사함 받아야 새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폴 투르니에는 심리학자이면서 스위스의 한 내과의사입니다. 그는 <한 의사의 사례서>에서 여러 가지의 감동적인 예화를 보여주는데 그 중에 한 빈혈증 소녀를 치료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의사는 여러 달 동안 빈혈증의 소녀를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헛수고였습니다. 결국 소녀를 산에 있는 요양원으로 보내도록 허락을 요청하기로 하고 요양원 의료 담당관에게 소녀의 피를 채혈하여 보냈습니다. 일 주일 후 답장이 왔습니다. 내용인즉 요양원에 와서 요양하는 것은 수락하겠으나 소녀의 피를 분석해 본 결과 전혀 빈혈 증세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소녀의 피를 다시 검사해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소녀의 백혈구의 수가 갑자기 변해 있었고 전혀 빈혈 증세가 없었습니다. 의아스럽게 생각한 의사는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지난번 이 곳에 온 이후에 네게 무슨 이상한 일이 있었느냐?“ 소녀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네, 선생님! 무슨 일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 심한 원한을 품어 왔던 사람을 갑자기 용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일로 인해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아 나갈 수 있다는 느낌을 얻었습니다.' 소녀의 마음이 변하자 백혈구의 수가 더불어 변했던 것입니다. 소녀의 마음이 치료되었을 때, 몸과 영혼이 아울러 회복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는 중풍병을 앓고 있던 사람에게 심각한 마음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했고 그 결과 온 몸이 마비된 중풍에서 치유된 것입니다. 그 사람은 죄를 범했습니다. 그 죄는 그를 사로잡았으며, 그 결과 육신의 마비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그러기에 그가 죄 사함 받았음을 깨달았을 때 병은 나아 버렸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마다 안고 있는 질병의 원인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 증상에 따라 치유하셨던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털 하나까지 헤아려 아시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와 질병의 원인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기적의 현장에서 시비를 거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해석하는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을 문제 삼아 율법을 잘 알고 있다는 그 서기관들이 이렇게 수군거렸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게 아닌가?” 그들의 심중을 꿰뚫어 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병에 걸리면 그가 분명히 죄를 지었다고 믿는 것이 너희들 아닌가?” 그들은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라,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그러자 중풍병자는 모든 사람 앞에서 곧장 일어나 침상을 들고 똑바로 걸어나갔습니다. 서기관들은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앙에 의하면 죄가 사해지지 않고는 병이 결코 치유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는 치유되었으며, 따라서 그들은 그가 죄 사함을 틀림없이 받았다는 사실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예수께서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임이 증명되었습니다.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만이 인류의 죄를 사해 주실 수 있으며, 그 사죄의 은총으로 우리 모든 인류가 구원받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서만이 사죄의 은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 이르는 질병에 걸려 있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치유되는 길은 오직 우리에게 사죄의 은총을 베푸시는 예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사랑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부딪칠 때 일어나는 아름다운 불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일어난 기적은 중풍병자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병든 친구를 사랑하는 네 친구의 사랑이 부딪쳐서 일어난 사랑의 기적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우리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 사랑의 표현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므로 사랑의 기적을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산돌-
2008년 3월9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식사기도하시는 변여화 어머니 -

- 어머니와 함께 식사하는 장득룡 목사 -
가족 모임
장흥룡 장로의 아내
김영희 집사의 생일


















창원 나들이









by 산돌의집 | 2008/03/09 20:03 | 주일설교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sandol9191.egloos.com/tb/881876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